
코리아타임뉴스 노승선 기자 | 제주특별자치도가 일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개인만의 부담으로 남기지 않고 행정이 제도적으로 관리하는 체계를 구축한다. 인공지능(AI)과 기후위기로 인한 일자리 구조 변화, 작업 중 건강 문제까지 포괄적으로 대응해 나갈 계획이다.
제주도는 27일 오전 도청 삼다홀에서 오영훈 지사와 한국노총 제주도지역본부, 도 공무원노동조합, 공무직노동조합이 참석한 가운데 ‘제2차 제주특별자치도 노동정책 기본계획(2026~2030)’을 발표했다.
‘노동이 존중받는 지속가능한 미래 도시, 제주’를 비전으로 5년간 449억 원을 투입해 43개 과제(신규 13개, 확대 8개)를 국정과제와 연계해 추진한다.
지금까지 배달 중 사고를 당하거나 프리랜서로 일하다 다치면 대부분 개인이 감당해야 했다. 제주도는 이를 개인의 책임으로 남겨두지 않고 제도적 보호 체계를 확대한다.
제주도 노동자 600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 결과, 산재보험 가입률은 60.2%, 고용보험은 62.3%에 불과했다. 플랫폼 노동자와 이동노동자는 사회보험 사각지대가 더 심각했다.
현재 택배기사, 대리운전, 방문강사 등 8개 직종에 한정된 산재보험료 지원을 보험설계사, 관광통역안내사 등으로 확대한다.
이후 고용보험, 건강보험 등 사회보험료를 정부 기조에 맞춰 단계적으로 추가 지원해 특수형태근로종사자와 프리랜서 등 모든 노동자를 사회안전망 안에 포함시킨다는 방침이다.
실태조사에서 노동자들은‘고용보험·산재보험 등 사회보장 지원’을 가장 필요한 정책으로 꼽았다. 이번 계획은 이 요구를 제도로 구체화한 것이다.
인공지능(AI)과 자동화로 일자리가 사라지거나 기후위기로 산업구조가 바뀔 때, 노동자가 실직한 뒤가 아니라 변화가 오기 전에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정의로운 노동전환’의 핵심이다.
제주도는 ‘정의로운 노동전환 지원·훈련센터’를 설치한다. 이 센터는 산업별·직종별로 어떤 일자리가 사라지고 어떤 일자리가 생기는지 미리 파악해 노동자가 새로운 직무로 이동할 수 있도록 전환 훈련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내연기관차 정비업이 전기차 중심으로 재편되면, 기존 정비사들이 실직하기 전에 전기차 정비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지원한다. 관광업이 기후위기로 타격을 받으면, 해당 노동자들이 다른 산업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재교육을 제공한다.
정의로운 노동전환 지원위원회를 구성하고, 실태조사를 실시해 구체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한다. 단발성 지원이 아니라 구조 변화에 따른 고용불안을 제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사고 후 보상과는 별개로 일하는 과정 자체에서 건강을 해치지 않도록 사전에 개입한다.
혹서기와 혹한기에 야외에서 일하는 배달·택배·화물 운송 노동자에게 넥밴드 선풍기, 쿨마스크 등을 제공하는 규모를 연간 5,400개까지 늘린다. 이륜차와 화물차 무상점검 및 소모품 교체 지원도 연 200건씩 진행한다. 노동자 실태조사에서 근무 환경 중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날씨’가 35.5%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를 위해 작업복 세탁소를 운영해 작업 중 발생하는 유해물질 노출을 줄이고 산업재해를 예방한다. 일·생활 균형을 위해 사업주에게 유연근무 장려금을 지원하고, 노동자 복지 공간인 혼디쉼팡을 노동권익 복합공간으로 활용해 서귀포 지역 노무상담실도 운영한다.
노동권익 보호 체계도 강화한다. 노동권익센터는 기존 상담 중심에서 벗어나 상담-조사-권리구제-정책 연계로 이어지는 ‘정책 생산형 노동권익 허브’로 기능을 바꾼다.
지역 거점을 활용한 ‘찾아가는 노동법률 상담 카름서비스’를 신규 운영해 노동자가 생활권 내에서 쉽게 권익 보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 심야 노동자 실태조사를 실시해 맞춤형 정책을 발굴하고,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를 위한 ‘고찌가게 마씀(자조모임)’도 지원한다.
이번 계획은 도민 노동 인식조사(700명), 노동자 실태조사(600명), 4회의 정책토론회, 5회의 전문가 워킹그룹, 3회의 노사민정 간담회, 원탁회의 등 1,300여 명이 참여한 의견수렴을 거쳐 마련됐다. 지난 14일 의견수렴 토론회를 거쳐 16일 한국노총‧민주노총 등 주요 노동단체와 최종 합의했다.
제1차 노동정책 기본계획(2021~2025)이 노동권익센터 설치 등 정책 기반 구축에 집중했다면, 제2차 계획은 이를 바탕으로 노동정책을 고도화하고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와 연계해 실질적 성과를 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제주도는 중앙정부의 근로감독 권한 이양에 대비해 전담조직과 전문인력을 확보하고, 중앙-지방 근로감독협의체를 운영해 사업장 근로조건 점검을 강화한다. 또한 노동정책 이행평가체계를 전국 최초로 구축해 매년 43개 과제의 이행도를 점검하고, 제주 노동권익지수를 개발해 정책 성과를 측정한다.
임기환 민주노총 제주본부장은 “도와 노동단체, 다양한 업종의 노동자가 토론하고 숙의해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새로운 도전 앞에서 정의로운 노동전환과 모든 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인 만큼 노정 간 신뢰를 바탕으로 정례적 협의를 통해 안전한 일터 조성 등 제주의 노동정책을 함께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조순호 한국노총 제주도지역본부 의장은 “이번 계획이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제 노동자의 삶을 바꾸는 정책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예산 확보를 통한 구체적 실행과 책임 있는 이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한국노총 제주본부도 건설적 파트너로서 적극 협력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계속 전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오영훈 지사는 “이번 계획은 노동을 개인의 선택과 책임 영역이 아닌, 행정이 제도적으로 개입해야 할 영역으로 명확히 설정한 것”이라며 “제주 노동자들이 일하다 다치면 보상받고, 일자리가 사라지기 전에 대비하고, 일하는 과정에서 건강을 해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단발성 지원이나 선언이 아니라 일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과 불안을 제도적으로 관리하는 체계로 정착시켜 노동이 존중받는 지속가능한 제주를 만들어가겠다”고 강조했다.
제주도는 2026년부터 연차별 시행계획을 수립해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현장 목소리를 지속 반영해 나갈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