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타임뉴스 오영주 기자 | 남해의 바닷바람이 파도를 밀어 올리듯, 통영의 가을은 예술의 물결로 차오른다.
바다와 섬, 그리고 그 속에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화폭이 되고, 노랫가락이 되고, 무대가 됐다. 예향(藝鄕)이라 불려온 통영은 9월, 전혁림예술제와 통영영화제, 국가유산 미디어아트가 어우러지며 도시 전체를 예술의 무대로 바꾼다.
전혁림예술제, 색채의 울림을 전하다
강렬하고 서정적인 색채로 ‘코발트 블루의 화가’라 불린 전혁림 화백은 평생 고향 통영을 화폭에 담았다. 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15년 제정된 전혁림미술상은 중견 작가를 조명하는 권위 있는 상으로 자리 잡았고, 전혁림예술제는 오늘날 통영을 대표하는 예술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올해 전혁림미술상의 영예는 목탄 회화로 독자적 세계를 구축한 이재삼 작가에게 돌아갔다. 그는 ‘검묵’이라 불리는 목탄으로 소나무, 폭포 등을 장대한 스케일로 구현하며, “전통과 현대를 절묘하게 융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11회 전혁림예술제는 시상식과 함께 다채로운 전시가 이어진다. 9월 12일부터 21일까지는 지난해 수상자 하태임 작가의 초대전 ‘컬러밴드’를 통해 색채가 선율처럼 흐르는 추상 회화를 선보인다. 이어 9월 23일부터 10월 1일까지는 청년작가 이진숙·이승희의 ‘푸른 기억의 조각들’을 통해 전혁림이 사랑한 푸른 바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전혁림예술제는 통영의 예술 정체성을 알리고 차세대 작가들을 조명하는 살아 있는 무대다. 하태임 작가의 강렬한 색채 리듬과 청년작가의 푸른 여정은 관람객에게 감각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최근 통영대교에 전혁림 화백의 대표작 ‘풍어제’가 입혀지고 있다. 바다 위 다리가 거대한 캔버스로 변모하는 순간, 통영의 일상은 예술과 하나가 된다. 통영대교를 건너 전혁림미술관에 이르면, 바다와 도시, 다리와 미술관을 잇는 여정 속에서 관람객은 또 하나의 특별한 기억을 만나게 될 것이다.
통영영화제, 독립영화의 꿈을 잇다
예술의 물결은 스크린으로도 이어진다. 오는 27일부터 29일까지 열리는 제3회 통영영화제는 불과 3년 만에 독립영화의 새로운 무대로 부상했다.
올해 경쟁부문에는 역대 최다인 712편이 접수됐다. 첫해 441편, 지난해 607편을 넘어 매년 기록을 경신하며 통영이 ‘독립영화의 새로운 무대’로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세 차례 심사를 거쳐 본선 진출작 12편이 확정돼, T-그린(가족·여행 ·환경), T-블루(로컬·바다), T-레드(예술·예술인) 세 섹션으로 나뉘어 감독의 독창적 시선을 담은 작품들이 관객과 만난다.
개막식은 27일 저녁 강구안 문화마당에서 열린다. 배우 서지석과 홍수아의 사회로 개막작 상영과 축하 공연이 이어지며, 항구의 야경과 어우러진 무대는 영화 같은 장면을 연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둘째 날부터 본선작 상영과 관객 투표가 진행되고, 마지막 날에는 시상식이 열린다.
비경쟁부문에서는 국내외 초청작 상영과 GV(관객과의 대화), 41초 청소년영화제, 봉래극장 특별 상영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뮤지컬 갈라쇼와 버스킹, 영화인 네트워킹도 준비돼 시민과 관객이 함께 어울리는 축제의 장을 완성한다.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통영영화제는 빠르게 성장해왔다. 1914년 봉래극장에서 시작된 통영의 영화사는 한 세기를 돌아 축제로 되살아나, 오늘날 통영을 찾는 이들에게 특별한 가을의 기억을 선사할 것이다.
국가유산 미디어아트, 평화의 빛을 밝히다
영화제가 열리기 전날인 9월 26일, 통영의 대표 국가유산 삼도수군통제영이 빛으로 깨어난다. 한 달간 이어지는 국가유산 미디어아트 '통제영, 평화의 빛'은 세병관의 정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세병(洗兵)’은 전쟁 무기를 은하수로 씻어 다시는 쓰지 않겠다는 평화의 약속을 뜻한다. 이번 전시는 그 정신을 빛과 소리, 홀로그램으로 풀어내며 역사의 기억을 오늘의 감각으로 일깨운다.
관람객은 입구의 ‘수호의 길’에서 시작해 깃발이 펄럭이는 ‘맹세의 바다’,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빛의 울림’, 전통 장인의 이야기가 살아나는 ‘염원의 공방’, 은빛 은하수가 쏟아지는 ‘평화의 은하수’까지 10개의 여정을 걷는다. 마지막 세병관에서는 오방색 오광대와 은하수 정령, 사자가 어우러진 퍼포먼스가 절정을 이룬다.
한 달간 이어지는 이 전시는 국가유산과 첨단기술의 만남을 통해 통영의 역사를 오늘의 언어로 되살린다. 가을밤, 평화의 빛으로 물든 통영에서 잊지 못할 순간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예술로 르네상스를 꽃피우다
통영의 예술은 축제장에 머무르지 않는다. 아트위크는 로컬스티치, 옻칠미술관, 전혁림미술관 등 문화 공간에서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공예 작품이 전시된다. 뮤직웨이브는 매주 토요일 강구안 해상무대에서 국악, 포크, 밴드, EDM 등 다양한 음악을 선보이며 항구를 공연장으로 바꾼다.
이처럼 통영의 예술은 도심 곳곳에서 일상으로 스며든다. 행사가 끝난 뒤에도 이어지는 문화의 숨결은 축제와 일상이 어우러진 도시의 풍경을 완성하며, 통영을 찾은 이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시민들에게 일상 속 문화 향유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천영기 통영시장은 “9월 통영은 도시 전체가 문화예술로 물드는 무대가 될 것”이라며 “많은 분들이 오셔서 통영의 매력을 마음껏 느껴보시길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