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리아타임뉴스 오영주 기자 | 1995년, 대한민국 민선 지방자치가 부활한 그해 진주시와 진양군이 하나로 합쳐졌다. 오랜 세월 같은 강을 바라보고, 같은 시장을 오가며, 같은 문화를 나눠온 두 지역은 이미 삶의 결이 닮아 있었다. 행정구역 통합은 서로의 정서를 잇는 ‘융합’으로 시민들 곁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그로부터 30년, 진주시의회는 지방자치가 단단히 뿌리내린 오늘날에 다음 30년을 향한 새로운 비전을 이야기한다. 의원들은 입을 모아 “이제 주민의 미래를 디자인하는 자치로 나아갈 차례”라고 말한다. 마치 엄격히 고른 원사 한올 한올로 실크를 엮어내듯 세심하고 창의적인 의정이야말로 진주의 내일을 촘촘히 설계하는 일이란 설명이다.
진주시의회의 부활, 그리고 통합 후 지금까지의 30년을 훑어보면 미래 방향성을 어렴풋이 가늠할 수 있다.
1991년, 되살아난 자치의 불씨
1987년 민주항쟁으로 지방분권 개헌이 단행되고 이듬해 지방자치법도 전면 개정되면서 1991년 4월 진주시의회와 진양군의회가 다시 문을 열었다.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해산된 이래 30년간의 공백을 딛고 돌아온 반가운 주민의 의회였다.
통합 전 두 의회는 ‘지역의 일은 주민이 결정한다’는 자치의 첫 교과서를 새로 써야 하는 개척자가 됐다. 별다른 길잡이나 과거 자료도 없고 지원마저 부족했으나 조례 한 줄, 예산 한 항목까지 지역에 대한 사랑을 담아 지방자치 정착에 헌신했다.
1995년, ‘통합 진주시의회’의 출범
1995년 1월 1일, '경기도 남양주시 등 33개도 · 농 복합 형태의 시 설치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진주시(당시 인구 약 26만 명)와 진양군(약 7만 명)이 도농복합도시로 합병되면서 ‘통합 진주시’가 탄생했다. 이때를 제1대 진주시의회로 본다. 그리고 같은 해 6월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지면서 본격적인 통합의회로 첫발을 내디딘 것이 제2대 진주시의회다.
당시 정부 주도로 관선 지자체장 체제에서 이뤄진 일률적인 통합임에도 진주시는 행정, 문화, 경제권을 하나로 묶어내면서 성장 잠재력은 키우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새로운 도시로서 지방자치의 실험대에 안정적으로 올라섰다.
물론 초기 진주시의회는 통합의 파고에 맞서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도심지와 대중교통체계 재편으로 행정사무조사를 수차례 진행했고, 상하수도 등 생활 인프라 확충, 도시와 농촌의 균형 발전,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의 진주’라는 정체성 확립이라는 큰 과제를 수행해야 했다.
2000년대, 성장의 도시·변화의 의회
새로운 천년, 2000년대 진주시의회는 주민자치위원회 구성 등 주민자치의 도입에 힘을 보태는 한편, 유서 깊은 진주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기 위해 집행부와 힘을 모았다.
이 시기 의회는 경남혁신도시 유치와 공공기관 이전 대응이라는 국토균형발전 과제, 진주성 복원·유등축제와 같은 문화도시 브랜드 구축을 주요 쟁점으로 다뤘다.
2010년대, 시민참여와 미래 전환의 디딤돌
2010년에는 의원 연구단체 제도가 도입됐고, 시민 청원 제도가 더욱 체계화하면서 ‘시민 참여형 자치’와 ‘의정 전문성’을 강조하는 정책 중심 의회로 변신을 꾀했다.
지방행정 전반에 확산된 공청회를 통해 시민 의견 청취에 무게감을 실으면서 2011년에는 주민참여예산을 제도화하는 등 시민과 지자체의 간극을 줄여나갔다.
남부내륙고속철도(KTX), 우주항공산업 등 미래산업 인프라의 초석 마련에도 총력을 다했다. 부산-대한항공 항공육성발전 양해각서(MOU) 체결 당시에는 경남 전역과 힘을 합쳐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민영화와 부산 이전을 저지해 서부 경남의 미래 먹거리 산업을 지켜냈다.
제9대 진주시의회(2022~), 새로운 자치의 방향
2022년 개원한 제9대 진주시의회는 32년 만의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에 따라 의회사무기구 인사권 독립, 정책지원관 제도 도입 등 ‘진정한 지방의회 자치 시대’를 경험하는 첫 세대다.
제도 변화에 힘입어 의원들은 예산·행정 감시 역할과 더불어 정책연구와 설계·입안 및 집행부와의 협의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을 수 있었다. 의회사무국도 높아진 의회 위상에 걸맞는 홀로서기와 체계적 의정 지원 역량을 갖추려 구조 개편, 직무전문교육 강화 등으로 조직을 쇄신했다.
9대 들어 3년간 무려 의원 연구단체 12곳이 활동해 막연한 학습에 그치지 않고 정책 연구용역 7건 등 성과를 바탕으로 정책 과제 발굴과 공유, 자치입법을 통한 실현 과정을 밟았다. 이 점은 2024년 후반기 원 구성 후 연구 활동의 다각화 측면에서 더욱 유의미한 성과로 나타났다.
또한 공무국외연수를 통해서는 지방의회 차원에서 보기 어렵던 세일즈 외교를 선보이며 국가 간 지역 교류의 새로운 물꼬를 텄다. 특히 도농복합도시라는 특성을 살려 세계적으로 품질을 인정받을 만한 농산물과 그 가공품을 소개하며 호응을 얻었다.
지역사회의 파수꾼으로서 선대 진주시의회의 뜻을 잇는 행보도 드러냈다. 그중‘LH 데이터센터 관외 이전 신설 추진 중단 및 지역 내 확장 이전 건의안’에서 엿보이듯 경남혁신도시의 존립을 저해하는 시도에 대해서 단호한 태도로 지역사회의 단결을 이끌었다.
한편, 올해 기록적인 폭우와 수해로 상처 입은 시민 곁에서 ‘특별재난지역 지정 촉구 대정부 건의문’을 발표해 재난 극복에 발 벗고 나서는 동시에 재해 예방 해법을 5분 자유발언과 시정질문으로 제안하며 시민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뚜렷이 힘찬 동행…낮은 자세로 더 먼 곳까지
본격적으로 재개된 청소년 모의의회와 견학프로그램의 흥행이 계속되면서 올해는 개원 첫해보다 3배 이상 많은 234명의 청소년이 진주시의회에서 지방자치와 민주주의의 의미를 배웠다. 시의회는 올해 하반기 교육부가 선정한 ‘교육기부 진로체험 인증기관’으로도 등록돼 청소년 체험 기회는 더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개방성과 투명성에 대한 시대적인 요구에도 꾸준하고도 민감하게 반응해 오고 있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공식 SNS 채널을 통해 시민들이 이해하기 쉽게 의정 정보를 전달하며 시민 의견을 상시 접수하고, 국민권익위 공공기관 종합청렴도 평가에서 한 단계 끌어올린 청렴도 2등급이란 위치도 고수했다.
백승흥 의장은 “진주와 진양의 통합, 그리고 지방자치 부활 후 30년이 지났다고 하니, 그동안 진주시가 더 좋은 도시로 성장하는 데 의회가 조금이나마 힘이 됐는지, 제 역할을 충실히 다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흘러간 세월의 평가만큼이나 다가올 미래에 대한 시민들의 소망을 실현하는 일도 중요하다”며 “임기 끝까지 동료의원들과 소임을 다해 시민에게 사랑받는 의회, 미래 도시 성장의 밑거름을 뿌린 의회로 기억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제9대 진주시의회는 다음 달 21일부터 12월 15일까지 제270회 제2차 정례회를 연다. 해당 회기는 2026년도 진주시 본예산 등 핵심 의안이 다뤄지는 올해 마지막 회의다.


















